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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장. 예수님을 구주로 만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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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26장. 예수님을 구주로 만나라

마태복음 26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5-01-26

말씀내용
26장. 예수님을 구주로 만나라 (찬 456)

1. 26~27장은 주님께서 잡히시어 심문을 받으시고 고난과 죽음을 당하시는 수난 기사다. 모든 시간의 순서와 때는 주님께서 정하신다(2). 주님께서 유월절에 잡혀 죽으실 것을 다시 말씀하시자 바로 '그때에' 대제사장과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모여 예수님을 죽일 의논을 한다(3). 그들의 계획은 유월절이 지난 후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었지만 모든 시간은 주님께서 정하신다. '그 때에' 가룟 유다는 돈에 눈이 멀어(물론 그가 기대했던 메시아가 아닌 것에 대한 실망과 배신감 때문일 수 있는데, 복음서는 그가 돈 때문에 그렇게 했다고 기록한다)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기로 대제사장들과 협의한다(14~16). 은 삼십은 소가 이웃 집 종을 받아 죽였을 때의 배상 금액으로 최소한의 금액이었다. 성경은 이것도 예언의 성취라고 설명한다(슥 11:12).

2. 주님은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드시면서 성만찬을 제정하신다. 이것은 주님께서 피로 맺으시는 새 언약이다. 언약은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당신의 피조물인 인간과 관계를 맺으시는 방식이었다. 그 모든 언약을 인간은 파기하였다. 이제 인간이 되신 주님께서 인간이 파기한 언약의 대가를 치르시고 당신의 피로 새 언약을 맺으신다. 죄사함은 인간이 거룩하신 하나님과 관계를 회복하기 위한 전제 조건이다(28). 십자가에서 주님께서 그것을 이루실 것이다. 이 상황에서 주님은 한 제자가 주님을 팔고(배신), 다른 제자들은 다 주님을 버리며 특별히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할 것을 미리 말씀하신다. 제자들은 당황하고 베드로는 부인한다. 가룟 유다는 주님께서 자신을 배신자로 지목하시지만 동요하는 것 같지 않다. 주님이 가룟 유다를 배신자로 지목하심에도 제자들이 가룟 유다의 배신을 알아채지 못했다는 것은 그들이 얼마나 당황과 혼란에 빠져있는지를 보여준다(25). 제자들이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그들이 이해하는 동방의 불문율 때문이기도 했을 것이다. 함께 음식을 먹은 사람은 결코 배신할 수 없다는 것이 동방의 불문율이었다. 목에 상금이 걸린 현상수배자라고 할지라도 아랍 사람들과 일단 함께 음식을 먹은 후에는 자기 정체를 밝혀도 될 정도로 말이다(아라비아의 로렌스). 그러므로 주님과 함께 음식을 먹은 유다의 배신은 아주 예외적인 경우이며, 구약 예언의 성취다(시 41:9). 물론 제자들이 다 주님을 버리게 되는 것도 구약 예언의 성취다(31, 54, 56; 슥 13:7).

3. 이런 상황에서 빛나는 한 여인의 헌신이 있다. 마르다의 동생 마리아다. 우리는 문둥이 시몬이 누구인지 모른다(6). 그녀는 극히 비싼 향유 옥합을 깨뜨리고 주님의 머리에 부어드렸다. 예수님 자신 외에는 아무도 이 행위를 이해하지 못한다. 제자들이 25장에서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라'는 말씀을(40, 45) 오해하여 들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난다. 이런 실수는 교회 역사 속에서 많이 행해졌다. 세상을 섬긴다는 명목으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속죄 사역의 중요성을 뒤로 제쳐놓기 일쑤다. 주님께서 칭찬하신 마리아의 행위의 본질은 많은 오해를 받아왔다. 예수님 당시 시신에 기름을 부은 후에 병을 깨뜨려 관에 넣는 것은 흔한 일이었다. 마가복음의 본문은 그녀가 옥합의 병을 깨뜨렸다고 기록한다(막 14:3). 이 행위로 그녀는 주님 앞에 놓인 일에 대한 자신의 이해를 주님께 고한 것이다. "나는 당신이 메시아이심과 십자가가 당신을 기다리고 있음도 압니다." 예수님께서 그녀를 칭찬하신 것은 아무도 깨닫지 못하는 십자가의 비밀을 그녀가 알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4. 겟세마네 동산으로 가신 주님은 베드로, 요한, 야고보 세 제자를 돌 던질 만큼 거리에 두시고 홀로 기도하신다(눅 22:41). 주님은 당신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대로 기도하신다. 주님의 기도는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다(39, 42). 주님께서 두려워하셨던 것은 인간들의 조롱이나 고문적 학대나 십자가의 비참한 죽음이 아니었다. 마르틴 루터의 말대로, 예수 그리스도처럼 죽음의 의미를 알고 죽음을 두려워한 인간은 없다. 주님은 죽음이 하나님으로부터의 단절이라는 죄의 결과임을 아셨고 그것을 두려워하셨다.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하신 말씀대로(창 2:17), 주님은 첫 아담의 범죄로 말미암아 찾아온 죽음을 온전한 의미에서 당하셨다. 제자들은 도무지 주님의 상황을 깨닫지도 동조하지도 못한다. 여전히 주님은 당신의 때를 스스로 결정하신다(46).

5. 유다와 함께, 대제사장과 백성의 장로들의 보냄을 받은 큰 무리가 왔다. 안토니아 수비대로부터 파견된 로마의 군대도 합세하였다(요 18:3,12). 유다는 배신의 입맞춤으로 예수님을 판다. 베드로의 만용은 그의 두려움을 증거할 뿐이다(51~53). 요한복음만이 이 제자가 베드로라고 밝힌다(요 18:10). 하나님의 일은 베드로의 방식으로 되지 않는다. 이것을 교회가 깨닫지 못했던 때가 역사 속에 너무나 많았다. 주님은 철저하게 구약 예언의 성취에 당신 자신을 묶으신다(54, 56). 하나님의 말씀을 스스로 철저하게 이루시는 하나님의 신실함을 보라. 예수님께서는 대제사장 가야바의 집 뜰에서 심문을 받으셨다. 그들이 조작한 거짓 증거들은 서로 일치하지 않아 예수님을 사형에 처할 충분한 증거가 되지 못했다. 결국 대제사장은 예수님께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말하라"고 묻고 주님은 완곡하지만 명백하게 당신의 메시아되심을 드러내셨다(64). 주님은 나는 메시아지만 너희가 생각하는 메시아는 아니라는 뜻에서 시편 110:1과 다니엘 7:13을 인용하셨다. 창조주이신 주님은 이 말씀 후에 신성모독으로 정죄를 받으시고 모인 자들의 조롱과 학대를 당하셨다.

6. 제자들은 다 도망하고 흩어졌으나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가야바의 심문 장소까지 따라왔다. 이 자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베드로가 사랑하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는 자리가 되었다. 닭이 울었고 베드로도 울었다. 하지만 이 사건은 베드로 인생의 최고의 행복, 주님의 자비와 은혜를 경험하는 최고의 사건, 주님을 구주로 만나는 복된 사건의 계기가 되었다.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놀라운 영적 통찰력을 지닌 여인 마리아와 함께 베드로는 예수님을 구주로 만난 사람이 되었다.

7. "하나님 아버지, 넘어짐과 실수와 실패가 저희 삶에 있을지라도 그것이 주님을 더욱 더 깊이 만나고 경험하는 사건들이 되게 해 주시고, 무슨 일을 만나든지 오직 주님만을 높이고 그 뜻을 이루는 저희 삶이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