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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9장. 참 복음과 거짓 복음을 분별하라(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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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레미야 29장. 참 복음과 거짓 복음을 분별하라(2)

예레미야 29장 / 김형익 목사 / 새벽말씀묵상 / 2014-08-02

말씀내용
29장. 참 복음과 거짓 복음을 분별하라(2) (찬 204)

1. 예레미야는 수년 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동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편지를 보낸다. 그들 중 장로들과 제사장들, 선지자들과 모든 백성에게 보내는 편지였다. 2절은 주전 597년 여호야긴 왕과 그 어머니 그리고 많은 관리와 방백들과 용사들이 붙잡혀간 것을 말한다. 마침 시드기야가 느부갓네살에게 보내는 서한이 있어서 왕의 신하 두 사람이 바벨론으로 가게 되었는데 예레미야는 그들 편에 서신을 보낼 수 있었다. 여기 두 사신은 사반의 아들 엘라사와 힐기야의 아들 그마랴인데 두 사람이 다 경건하여 예레미야에 대해서 긍정적이었던 자들이다. 바벨론 포로로 가 있는 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은 거기서 집을 짓고 전원을 만들고 자식들을 결혼시키고 자식들을 낳으면서 살라는 것이다. 또 그 나라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셨다. 이것도 그들이 평안함 중에 살아갈 수 있기 위함이다. 이것은 자칫 체념과 패배주의적 묵인처럼 들리기 쉬웠을 것이다. 혹시 선지자들이나 예언한다는 자들이 다른 말을 해도 듣지 말며 꿈과 같은 것을 말해도 마음을 쓰지 말라고 경고한다. 이렇게 하시는 하나님의 의도는 자기 백성을 그 잘못대로 갚으시거나 그 이상으로 벌을 주심으로써 괴롭히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백성을 진노 중에라도 평안함으로 인도하시며 궁극적으로는 소망을 주고자 하심임을 보여준다(10~14). 하나냐가 말한 것처럼, 2년 안에는 아니지만, 70년이 차면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돌아오게 하실 것이다(10). 그러나 이것도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을 찾고 기도하여 하나님을 다시 만나게 될 때 이루어질 일이다(12~14). 회개가 회복에 선행한다.

2. 바벨론에 포로로 가서 이 편지를 받은 유다 백성들의 태도는 본토에서와 같이 부정적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자기들을 위하여 바벨론에서도 선지자들을 일으키셨다는 것이다(15). 그러니 멀리 예루살렘에서까지 예레미야가 자기들을 위해서 예언할 필요가 있느냐는 것이다. 이 말에 대하여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부지런히 선지자들을 보내셨으나 그 말을 듣지 않은 예루살렘에 남아있는 자들에 대하여는 악하여 먹을 수 없게 된 무화과같이 여겨서 멸망과 부끄러움을 당케 하실 것임을 상기시키면서(24장) 바벨론으로 포로로 간 너희는 그러지 말라고 권면한다(16~19). 동시에 그들이 말하는 바, 바벨론에서 자기들을 위해서 하나님이 일으키셨다는 그 선지자들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언급한다. 그 대표적인 자들은 아합과 시드기야인데, 그들은 이웃의 아내와 행음하는 자들일 뿐 아니라(도덕적 타락),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말한 자들이다(23). 이것은 예레미야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이 보셨고 하나님이 증인이 되신 말씀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느부갓네살의 손에 붙여 불살라 죽이실 것이다.

3. 본문에는 또 한 사람의 거짓 선지자의 이름이 등장하는데 그는 바벨론에 거주하던 스마야다(24). 그는 예레미야의 편지를 보고 나서 예루살렘에 있는 제사장 스바냐와 제사장들에게 편지를 보냈다. 이르기를,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를 제어하라고 너희를 제사장으로 삼으셨는데 그 직분을 행치 않아서 예레미야가 우리에게 이런 거짓 편지를 보내는 것이 아니냐며 제사장들을 책망하였다. 스마야는 분명히 신 13:1~5을 인용하면서 이 편지를 쓰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거짓 선지자가 누구인가에 대한 판단이 틀렸다는 것이다. 제사장 스바냐는 예레미야에게 이 편지를 읽어주었다. 그러자 하나님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였는데, 스바냐로 하여금 포로들에게 편지를 쓰게 하라는 것이다. 내용인즉, 스마야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가 아니며 그가 거짓을 사람들로 믿도록 미혹한다는 것, 이 일로 인하여 하나님께서 스마야를 치실 것이라는 것이다.

4. 얼마나 혼란스러운 시대였는가? 선지자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서 전하지만, 언제나 돌아오는 즉각적인 결과는 반대였고 비난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이 세우신 선지자가 많이 있는데, 왜 네가 바벨론에 있는 우리에게까지 말씀을 전하면서 나대느냐는 것이다. 문제는 멀쩡한 선지자들로 보이는 자들이 너무나 많았다는 사실이다. 앞 장에 등장한 하나냐를 비롯하여, 본장에 등장하는 아합, 시드기야, 그리고 스마야 등이다. 그들의 메시지는 다 동일한데, 왜 예레미야만 다른 이야기를 전하느냐는 것도 그들에게는 걸림돌이었다. 누가 옳은가? 무엇이 참된 하나님의 말씀인가? 이런 혼란스러운 상황은 오늘날의 상황과 다르지 않다. 오늘날에도 목사가 많고 교회가 많다. 어떻게 분별할 것인가? 영적 타락은 거기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도덕적으로도 심각한 타락을 가져온다. 아합과 시드기야가 이웃의 아내를 행음했다는 것이 그것이다. 오늘날에도 그런 일은 동일하게 벌어지고 있지 않은가? 분별해야 한다.

5. “하나님 아버지, 저희가 이처럼 영적으로 혼란스러운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분별하고 참된 하나님의 종을 분별할 수 있게 하시고, 거짓에 미혹당하지 않도록 지켜주시옵소서.”